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 청아출판사
나의 점수 :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자괴감 속에서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살만한 가치가 있나를 두고 고민할 때에 [나치수용소 체험담을 읽자.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억압된 현실에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어떻게 지켜 살아남았는지 알자]고 적어뒀었다. 그러고 굿바이게으름에서 빅터 프랭클을 언급한 것을 보고 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코비가 7가지습관에서 언급한 자극에 대해 반응을 선택할 자유와 비현실적 낙관론자의 죽음의 출처가 이 책이 아닐까 싶다.
강제수용소에서는 죄수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상실하도록 모든 상황에 만들어지고 꾸며진다. 자신의 삶에서 친숙했던 모든 목표는 순간적으로 강탈당한다. 오직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마지막 인간의 자유'로서 '주어진 환경에서 자기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뿐이다. 옛날 스토아 학파와 똑같이 현대의 실존주의자들이 인정한 이 궁극적인 자유는 프랭클의 이야기에서 뚜렷하고도 깊은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죄수들은 한낱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고통이 보람찬' 것으로 선택함으로써 겉으로 보이는 그의 운명을 초월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증명했다.
ㅡ서문, 고든 W. 앨포트
프랭클박사는 정신과전문의였다가 아우슈비츠에 수용되고, 죄수로서의 자신과 동료들을 관찰한다. 그리고 '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삶의 동력으로 인식하는 로고테라피를 발견했단다.
"우리가 삶에 걸고 있는 기대는 진실로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삶이 우리들에게 걸고 있는 기대인 것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멈출 필요가 있다. 그 대신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매일같이, 또는 수시로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는 존재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대답은 반드시 말과 명상에 아닌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처신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는 삶의 문제에 대해 올바른 대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앞에 끊임없이 놓여있는 삶의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것이다.
ㅡ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pp.129-130
인간은 책임질 줄 아는 동물이며, 그의 삶에 잠재해 있는 의미를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나는 삶의 진실된 의미가 폐쇄된 조직체처럼 인간의 내면이나 그 자신의 '영혼(psyche)' 속에서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발견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인간 실존의 참된 목적은 자아 실현(self-actualization)이라고 불리는 것에서 발견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 실존은 본질적으로 자아 실현이라고 보다는 자아 초월(self-transcendence)인 것이다. …… 인간이 삶의 의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 자신을 떠맡는 만큼 그 자신을 실현할 수 있을 뿐이다. ……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 속에 존재하는 이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다른 방법으로 발견할 수 있다. (1) 행위를 함으로써, (2) 가치를 체험함으로써, (3) 고통으로써. 첫째는 성취, 혹은 완성의 방법임이 매우 분명하다. …… 삶에서 의미를 찾는 둘째 방법은 자연이나 문화의소산물과 같은 그 무엇을 체험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또한 그 누구를 사랑함으로써, 그 체험으로 이루어진다.
사랑은 다른 인간을 그 인격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누구도 어떤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인간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게 될 수 없다. 사랑의 심령적인 행위로서 그는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본질적인 특성과 특징을 알 수 있게 된다. 더욱이 그에게 잠재하고 있는 것, 아직 실현되지 않았으나 마땅히 실현되어야 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을 통하여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잠재능력들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우쳐 줌으로써 그는 그러한 가능성을 실현하게 해주는 것이다.
ㅡ 같은 책, p.184